

2007년 11월 30일 막 비행기에 올라 신문을 집었다. 한동안 잘 볼 수 없을 종이 신문이라 생각하고 어느 때보다 꼼꼼히 신문을 읽었다. 그런데 거기 주영형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1981년 11월 30일은 바로 이윤상군을 유괴 살해한 주영형이 사건 발생 371일 만에 검거 됐던 바로 그 날이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 이 사건을 다룬 시나리오와 씨름하고 있었던 터라, 나의 출발일과 그의 검거일이 공교롭게도 겹친 것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도주했고, 그는 검거된 것인가? 아니다. 나는 결코 도주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주영형과 이윤상에 대해서 그리고 주영형을 도운 여고생들에 대해서도 잊고 싶었지만, 이 작은 기사 하나가 나를 또 붙들고 만 것이다. 기사의 '미해결보다 괴로운...'이라는 제목은 정말이지 시나리오에 대한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기자는 아마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한 영화 '밀양'과 소설 '벌레이야기'가 올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기 때문에 기사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26년 전의 사건에 대해 '미해결보다 괴로운...'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이 사건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뭔가의 불씨를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옆의 사진은 어느 바에서 찍은 밴드의 공연 포스터다. 2007년 12월 20일에 하는 공연이고, 그 날은 내 생일이다. 단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밴드다. 알고 있는 태국 사람이라곤 축구 선수 피아퐁과 영화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뿐이니까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여하튼 이번 생일에는 이 밴드의 공연장에 한번 놀러가볼까 생각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생일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는 덤덤했다. 다른 사람 생일 챙기는 것도 둔해졌다. 사나운 복숭아는 어느날 선물 안 챙겼다고 울기도 했다 ^^; 부랴부랴 선물을 전달했지만 이미 세 달 늦은 뒤였다.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 '만년'의 내용이 떠오른다. 어느 겨울날 여름 옷 한 벌을 선물 받고는 '내년 여름까지는 살아봐야겠군'이라고 혼잣말하던 대목.
어릴 적 내 생일에는 늘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 정말 뭔가 씌인 것 같이, 초대한 친구들이 술이 거나해지면 이상하게도 싸움을 벌이곤 했다. 한번은 내가 싸운 적도 있는데, 싸움을 말리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야수로 돌변해 나와 싸우던 친구의 손등을 깊게 할퀴었다. 어찌나 깊은 상처였던지, 그 친구의 손등에는 흉터가 남았다. 미안해 세준. 너의 어릴적 소망, 'kids in company'에 대한 꿈은 이루고 있을지 궁금해. 쉬는 시간마다 너는 네 미래의 회사를 위한 로고 디자인을 하곤 했었지...
올해 생일은 혼자다.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아니라 진짜 혼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일에 무감각해지려해도 무감각해 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만으로 33세에서 34세가 되는 것이니까 더 의미있게 느껴진다. 33이라는 숫자는 어려서부터 늘 생각해왔다.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인 33세의 여름에 돌아가셨고, 어릴 때도 늘 이 숫자를 넘어가는 것이 고비일 거라고 생각했다. DJ 안과장에게 듣기로는 사나운 복숭아도 이 숫자에 집착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히 극복할 만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혼자인 것은 나뿐이 아니다. 남겨진 지순이도 혼자다. 생일에 혼자 있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챙겨줄 수 없는 것이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고, 나는 더 배워야 한다.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